언론 등 정신적 자유에 관한 결정
88헌마22
공권력에 의한 재산권침해에 대한 헌법소원
별칭 : 임야조사서 열람신청 사건
종국일자 : 1989. 9. 4. /종국결과 : 인용(위헌확인),기각
D88M022.hwp
판례집 1권 176면
가. 사건의 배경
이 사건은 아직 국내에 정보공개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초로 행정청이 보유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을 헌법상의 알권리의 내용으로 인정함으로써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게 국민의 정당한 정보공개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의무를 확인한 사건이다.
청구인은 6.25 직후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토지가 자신도 모르게 국유화된 사실을 알고 소유권을 회복하고자 그에 필요한 경기도 이천군청 보유의 구임야대장, 민유임야이용구분조사서(임야조사서를 의미), 토지조사부, 지세명기장 등의 열람·복사를 여러 차례 신청하였으나 피청구인인 이천 군수가 토지조사부와 임야조사서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아니한채 불응하자, 그 부작위가 청구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였다고 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결정의 주요내용
헌법재판소는 8인 재판관의 다수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국민의 알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청구인의 열람·복사신청에 대한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헌법 제21조의 언론·출판의 자유는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발표의 자유)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전달의 자유)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고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은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을 전제로 하는데,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은 충분한 정보에의 접근이 보장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에서 정보에의 접근·수집·처리의 자유 즉 '알권리'는 표현의 자유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알권리의 핵심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즉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일반적 정보공개를 구할 권리(청구권적 기본권)이다.
알권리는 법률의 제정이 없더라도 헌법에 의해 직접 실현이 가능한 기본권이므로 정부가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청구인의 정보개시요구에 대하여 아무런 검토없이 불응하였다면, 이는 청구인이 갖는 헌법 제21조에 규정된 언론·출판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한 내용인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인 제한이 가능한바, 제한에서 오는 이익과 알권리 침해라는 해악을 비교·형량하여 그 제한의 한계를 설정하여야 하고 알권리에 대한 제한의 정도는 청구인에게 이해관계가 있고 공익에 장해가 되지 않는다면 널리 인정해야 할 것이며, 적어도 직접의 이해관계가 있는 자에 대하여서는 의무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임야조사서 등이 비밀 또는 대외비로 분류되어 있다거나 그 공개로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프라이버시)이 침해된다거나 하는 사정을 발견할 수 없고, 아울러 이를 금지해야 할 법령상의 근거도 물론 찾아볼 수 없으므로 본건 문서 자체에는 공개 제한요인이 없는바, 청구인의 열람·복사신청에 대한 피청구인의 부작위는 청구인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다.
이에 대하여 최광률 재판관은 청구인은 정부공문서규정 제36조 제2항에 의하여 임야조사서 및 토지조사부의 열람·복사청구권이 있고 이에 대한 행정청의 부작위는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므로 이를 경유하지 아니한 청구인의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다. 사후경과
이 결정이 선고된 후 일간신문에서는 당시 초안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보공개법이 제정될 때까지라도 국민의 권익보호와 권리실현을 위해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앞으로 정보공개법이 제정될 경우 포함돼야 할 공개의 범위와 한계의 기준 등을 명확히 제시, 이 법속에 위헌요소가 포함되는 것을 사전에 봉쇄하게 됐다는 의미도 갖는다(동아일보 1989. 9. 5.)거나, 과거 언론기본법 등 우리나라의 언론·출판 관계법에서도 알권리를 청구권적 기본권으로 적극 해석하는 규정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 비추어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된다(한겨레신문 1989. 9. 6.)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학계의 견해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기본권보호 의지만 있을 뿐 명확한 헌법이론적 근거가 없는 결정이었다(강경근,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 법률신문 제1881호, 1989. 10. 16.)거나, 자유권적 기본권인 언론·출판의 자유로부터 보다 광범위한 내용의 청구권적 의미의 알권리를 도출해 내는 것은 이론구성의 충실성에 문제가 있다(홍준형, 정보공개청구권과 정보의 자유, 현대법의 이론과 실제)는 비판적 견해와, 반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결론이 획기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논증에 있어서도 매우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본다(이승우, 국민의 알권리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평석, 사법행정 1990년 4월호)는 긍정적 평가로 나뉘어졌다.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 이후에도 1991년 5월 13일 선고한 90헌마133(기록등사신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확정된 자기의 형사재판기록을 열람하거나 등사하는 것을 알권리로 인정하고 이를 거부한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장의 행위는 청구인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알권리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국민의 알권리에 관한 일련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자 국회는 1996년 12월 31일 법률 제5242호로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을 제정하여 모든 국민에게 정보공개청구권을 인정하는 등 국민의 알권리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조치를 취하여 동법은 199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