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선거관계에 관한 결정
94헌마246
불기소처분취소
별칭 : 12 · 12 불기소 사건
종국일자 : 1995. 1. 20. /종국결과 : 기각,각하
d94m246.hwp
판례집 7-1권 15
가. 사건의 배경
이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로 야기된 통치권의 공백상태에서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계엄사령관 정승화 등 군 수뇌부를 체포하고 군의 주도권을 탈취함으로써 실질적 권력장악의 계기가 된 12·12사건에 대한 고소사건에 관하여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리자 그에 대하여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하여 각하 또는 기각결정한 사건이다.
12·12사건 후 전두환은 1980년 9월 1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 7년 5개월 24일간 제5공화국 대통령을 지냈고, 노태우는 그 이튿날부터 1993년 2월 24일까지 5년간 제6공화국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 1993년 2월 집권한 김영삼 정부는 12·12사건을 신군부가 정상적인 군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군사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장악한 '쿠테타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도 과거사는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 사건의 피해자인 청구인 정승화 등 32인은 위 사건의 주역들이 권좌의 핵심에서 물러나자 그 신원(伸寃)을 위하여 전두환, 노태우 등 12·12사건 관련자 34인을 내란 및 반란죄 등으로 1993년 7월 29일 고소를 제기하였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는 1994년 10월 29일 위 고소사건을 포함한 8건의 고소·고발사건에 관하여 모두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내란죄에 대하여는 12·12사건으로 신군부는 군 주도권을 장악하였을 뿐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혐의없음처분을, 반란죄에 대하여는 혐의사실은 인정되나 여러 정상을 참작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이다.
청구인들은 검찰의 처분에 불복하여 항고 및 재항고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자 1994년 11월 24일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결정의 주요내용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재직기간 동안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 여부를 판단한 다음 내란죄에 관한 부분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각하하고 나머지 범죄에 관한 부분은 적법성은 인정되나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자의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내란죄의 경우에는 재직중 소추가 가능하므로 재직기간중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아니하나, 내란죄 또는 외환죄가 아닌 군사반란죄에 있어서는 그를 이유로 한 소추가 헌법상 허용되지 아니하므로 그 공소시효는 재직 기간중 정지된다. 이는 헌법규정이 대통령의 헌법상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도모하기 위하여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하는 것에 그칠 뿐 대통령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신분상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의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이 대통령의 재직중에도 정지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대통령은 재직 전이나 재직중에 범한 대부분의 죄에 관하여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결과 일반국민이 누릴 수 없는 특권을 부여받는 셈이 되어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결과가 된다.
결국 내란죄의 피의사실은 그에 대한 공소시효가 1994년 12월 11일 만료되었음으로 그 부분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한편 군형법상의 반란죄 등에 관한 공소시효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의자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인 7년 5개월 24일간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어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부분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은 적법하다.
군사반란혐의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과 관련하여 보면 피의자들의 행위가 군권(軍權)의 장악을 목적으로 불법한 병력동원과 무력행사를 통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저지른 하극상의 군사반란으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좌절감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였고 우리 헌정사에는 왜곡과 퇴행의 오점을 남기게 한 범죄행위이며, 피의자들이 범행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청구인들에 대하여는 물론이고 궁극적인 피해자인 국민들에 대하여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 바 없었다는 사실 등은 기소를 뒷받침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 사건 피의자들 중 두 사람은 대통령으로서, 나머지 피의자들은 그 보조자로서 혹은 국회의원 등으로서 십수년간을 국정운영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이 나라를 이끌어 왔고 그 기간 동안 형성된 질서는 이미 우리 역사의 일부로서 자리잡아 크든 작든 그리고 싫든 좋든 오늘날의 정치·경제·사회의 전반에 걸친 기성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범행의 핵심적 주역 중의 한 사람인 전두환은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고 노태우는 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직접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범행의 처리와 관련되어 국회의 소위 '5공비리청문회'를 통하여 한차례의 여과과정을 거쳤다는 사실 등은 기소유예를 정당화하는 사실이다.
위와 같이 두가지 대립하는 사실들을 형량할 때 양자간의 가치의 우열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자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황도연, 김문희 재판관은 헌법 제84조는 공소시효의 정지에 관한 명문규정이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대통령 재직중 그의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는 정지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개진하였고, 조승형, 고중석 재판관은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은 검사의 합리적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부당한 처분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개진하였다.
다. 사후경과
이 사건은 이른바 12·12사건 이후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여 이 나라를 통치한 후 권좌에서 물러나고 사건이 발생한지 14년여의 세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들의 고소와 그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에 의하여 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법적 평가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제도가 권력과정에 대한 헌법적 판단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한 사건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은 각계 각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위 결정에서 대통령이 범한 죄 가운데 내란죄와 외환의 죄를 제외한 여타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판시내용은 법치국가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이 결정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반란죄 등의 공소시효가 2002년 경에야 완성된다는 취지를 내포하는 것이어서 12·12사건에 대한 법적 공방의 불씨를 계속 남겨두는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5·18사건과 관련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소위 5·18 특별법을 제정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동법의 위헌여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등 다방면으로 정치적·법적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