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선거관계에 관한 결정
96헌가2등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 위헌제청 등
별칭 : 5·18 특별법 사건
D96k002.hwp
1996. 2권 16면
가. 사건의 배경
이 사건은 12·12 사건 및 5·18 사건을 주도한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공소시효의 진행을 정지한다고 규정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한 사건이다.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1995. 12. 21. 법률 제5029호) 제2조 제1항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제1항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이라 함은 당해 범죄행위의 종료일로부터 1993년 2월 24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2년 2월 출범한 문민정부는 12·12 군사반란사건, 5·18 내란사건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들을 권좌의 핵심으로부터 밀어내면서 12·12 사건을 쿠데타적 사건으로 새롭게 규정하였다. 애초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로 만족하고자 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을 전기로 하여 학계, 재야, 시민단체, 학생운동권 등의 집요한 특별법 제정 압력 앞에 결국 특별법의 제정방침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 1995년 12월 21일자로 제정·공포되자 29일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는 기히 불기소처분하였던 12·12사건 및 5·18사건 관련 피의자들 전원에 대한 형사사건을 재기한 다음 이들에 대하여 12·12사건과 관련된 반란중요임무종사 및 5·18사건과 관련된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피의자들은 영장청구일에 자신들에게 적용된 위 법률 제2조가 공소시효 진행의 정지사유를 정한 것으로서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헌법 제13조 제1항에 위반되는 규정이라고 주장하면서 서울지방법원에 이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다. 이에 동 법원은 12·12사건과 관련한 제청신청인들의 제청신청을 받아들여 이 법률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으나(96헌가2), 5·18사건과 관련한 신청에 대하여는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피의사실이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하여 그 혐의사실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이상 이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는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였고 이에 청구인들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하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96헌바7, 96헌바13).
나. 결정의 주요내용
헌법재판소는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와 관련하여 위 법률시행 당시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경우에는 재판관 전원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의견인 반면,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경우에는 김진우, 이재화, 조승형, 정경식 재판관 등 4인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의견이고, 김용준, 김문희, 황도연, 고중석, 신창언 재판관 등 5인이 한정위헌의견이나 이 경우에도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2항 제1호에 정한 위헌결정의 정족수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여 합헌으로 결정하였다.
개별사건법률 금지의 원칙과 관련하여 위 법률조항이 12·12사건과 5·18사건에만 적용됨을 명백히 밝혀 동법 제정당시 이미 적용의 인적범위가 확정되거나 확정될 수 있는 내용의 것이므로 개별사건법률이라고 할 수 있으나, 개별사건법률금지의 원칙은 법률제정에 있어서 입법자가 평등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특정규범이 개별사건법률에 해당한다 하여 곧바로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개별사건법률이라도 차별적 규율이 합리적 이유로 정당화되면 합헌인데, 위 특별법에 의한 차별은 집권과정에서의 불법적 요소나 올바른 헌정사의 정립을 위한 과거청산의 요청에 비추어 볼 때 개별사건법률에 내재된 불평등 요소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형사법률의 소급효와 관련하여서는, 먼저 위 법률조항이 실정법의 해석에 의하여 당연히 도출되는 사유를 확인하여 공소시효정지 사유의 하나로 규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 확인적 법률인지, 아니면 사후에 새로운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를 규정한 이른바 소급입법에 해당하는 형성적 법률인지가 문제되었다.
김용준, 정경식, 고중석, 신창언 재판관은 공소시효제도는 헌법적 제도가 아니라 법률상의 제도이기 때문에 법원의 전속적 사항인 법률해석의 문제이므로 위 법률조항이 확인적 법률인지 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하고, 법원이 위 법률을 형성적 법률이라고 해석하는 경우에는 위 법률조항이 소급입법에 해당되어 위헌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하였다. 김진우, 이재화, 조승형 재판관은 공소시효는 소추기관이 유효하게 공소권을 행사하는 데 법적·제도적 장애가 없을 때에만 진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위 법률조항은 법 및 법집행의 왜곡에 따르는 소추의 장애사유가 존재하여 일정 범위의 헌정질서 파괴행위자들에 대한 검찰의 소추권행사가 불가능하였으므로 당연히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법리를 확인한 법률로서 소급입법이 아니라고 하였다. 김문희, 황도연 재판관은 위 법률조항에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으로 규정한 전기간, 모든 피의자에 대하여 동조항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것인 만큼 이 법률조항은 소급적 효력을 가진 형성적 법률이어서 당연히 위헌문제가 제기된다고 하였다.
위 법률조항의 위헌여부에 관하여는 소급효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가정하여 판단하였다.
재판관들은 우선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법원이 위 특별법이 처벌하려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동법이 단지 진행중인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법률로서 부진정소급효만 갖게 되는 경우에는 위 특별법에 의하여 실현하려는 즉 집권과정에서의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범한 자들을 응징하여 정의를 회복하려는 중대한 공익이 공소시효에 의하여 보호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미약한 신뢰보호이익보다 크다고 할 것이므로 위 법률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반면 법원이 위 특별법 소정의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여 동법이 이미 과거에 완성된 사실 또는 법률관계를 규율대상으로 사후에 새로운 법적 효과를 생기게 하는 진정소급효를 갖게 되는 경우에 대하여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나뉘었다.
김진우, 이재화, 조승형, 정경식 재판관은 진정소급입법은 법치국가원리에 의하여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 즉 기존의 법을 변경하여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에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 법률조항은 공소시효의 완성이라는 법률적 이익에 의한 헌정질서 파괴범의 신뢰보호보다 현저히 우선하는 중대한 공익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비록 진정소급입법적 성격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위 법률조항은 합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김용준, 김문희, 황도연, 고중석, 신창언 재판관은 형사실체법의 영역에서는 형벌은 바로 신체의 자유와 직결되기 때문에 적어도 범죄구성요건과 형벌에 관한 한, 어떠한 공익상의 이유나 국가적인 이익도 개인의 신뢰보호의 요청과 법적 안정성에 우선할 수 없다고 전제한 다음,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소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뒤에 뒤늦게 소추가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형벌을 사후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범죄구성요건을 제정하는 것과 실질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므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 그 뒤 다시 소추할 수 있도록 법률로써 규정하는 것은 헌법 제12조 제1항 후단의 적법절차의 원칙과 제13조 제1항의 형벌불소급의 원칙 정신에 비추어 헌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헌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법률조항이 특별법 시행일 이전에 특별법 소정의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도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의견을 밝혔다.
다. 사후경과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위 법률조항을 합헌으로 선언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위헌논쟁은 법적 차원에서는 일단 종료되었고 12·12사건과 5·18사건 관련자들 중 구속영장의 집행이 보류되었던 일부 인사들에 대한 구속영장의 발부가 가능하게 되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위 두 사건 관련자들 처벌에 대한 걸림돌이 제거되었다. 그리고 특별법이 진정소급입법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경우에도 합헌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법원은 공소시효의 기산점에 대한 고심없이 오로지 피고인들의 유무죄에 대해서만 심리를 집중할 수 있도록 하여 법원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은 여론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한겨레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의 1996. 2. 17. 각 사설 등). 반면에 헌법재판소는 실질적으로는 특별법의 위헌가능성을 지적하면서도 형식적으론 특별법제정의 골간을 흔들지 않는표결의 묘수를 찾음으로써 사실상 정치적 요구를 절묘하게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헌법에 대한 최고결정기관으로서 법의 본질적 문제를 비켜갔다는 지적만큼은 피하기 어렵다거나(한국일보 1996. 2. 17.),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 너무 난해하여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동아일보 1996. 2. 18. 사설).
한편 검찰은 1996년 2월 28일 12·12사건과 5·18사건에 관한 수사를 종결하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한 16명을 기소하였다. 서울지방법원은 동년 8월 26일 전두환에 대해서는 사형을, 노태우에 대해서는 징역 22년 6월을 선고하였다. 12월 16일 항소심에서는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된 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여 오다가 동년 12월 22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